많은 한국 의사들이 자신이 지금까지 닦은 고급 술기, 지식을 다른 나라에서 펼쳐보는 것을 생각하고 계시는데요, 막상 이유를 물어보면 자신이 외국으로 가야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실 수 있는 분들이 많지는 않은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의사들이 미국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의사를 존경하는 나라
미국은 자유경쟁을 모토로 삼는 나라입니다. 의사면허를 정부가 아닌 의대에서 발급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끝을 보여주는 주장이 나온 곳(밀튼 프리드먼의 '자유란 무엇인가' 참고)이 미국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바로 전문가를 인정해주는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굳이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전문가 집단 스스로의 자정 능력으로 면허에 대한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환자까지 의사를 존경해 주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20 Most Trusted Professions in America라고 하는 미국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3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가 의사였습니다. (2위는 간호사, 3위는 우체부, 4위는 군인) 의사가 가장 존경받는 직업임은 2023년뿐만 아니라 수십 년째 흔들리지 않는 사실입니다.
2. 미국은 안 되는 것도 많고 되는 것도 많다.
한국은 경직된 사회입니다. 의대 입시는 모든 것이 정형화되어 있고 양적 평가에만 매몰되어 있어, 지원자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질적 평가 시스템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이것이 '병원 입시'에도 적용되는 추세라서, 레지던트를 뽑을 때 이전에는 인턴 생활을 열심히 잘하는 친구들을 '질적 평가'에 근거하여 선발하였지만 이제는 양적 평가된 인턴 점수, 의대 성적 등을 가지고 뽑는 곳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양적 평가'에 메어있지 않은 사회입니다. 그 말인 즉슨, 시험 점수가 낮은 외국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당신이 USMLE 점수가 바닥이라도 미국 유명 병원의 펠로우로 갈 수 있다는 얘기죠. 미국은 네트워크 사회입니다. 프로그램 디렉터나 어텐딩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면 나중에 그 병원에 들어가는데 분명히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펠로우 같은 경우에는 성적보다도 이러한 네트워킹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수련 중인 병원의 교수님이나 인맥을 통해서 미국 병원에 펠로우 문의를 해보세요. 생각보다 문호가 많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3. 미국 의료산업은 이해당사자가 매우 많다
한국 의료 시스템은 단일 공보험 체계입니다. 심평원이 만든 차림표에 따라 의료 행위를 해야 하죠. 의사가 한 의료 행위에 대해 보상을 주는 곳이 건보공단 한 곳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좋든 싫든 심평원의 가이드라인, 지침에 얽메이게 되어 있죠.
하지만 미국인 민간보험 체계입니다. 환자 한 명에 대해, 의사 한 명에 대해 여러 보험 회사가 경쟁을 하는 것이죠. 자유시장경쟁 체제에서 보험회사들은 환자들에게 더 좀 더 싼 프리미엄을 제시하고, 의사들에게는 서로 좀 더 비싼 보상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어떤 보험회사에 가입된 환자를 받을 것이지 결정하는 것은 의사이죠. 의사에게 인색하게 보상해 주는 보험회사에 가입된 환자들은 안 받으면 그만입니다. 물론 개원 초창기에는 메디케이드나 다른 저렴한 보험 환자를 받으면서 입지를 다져야겠지만 나중에 기반을 잡은 후에는 환자를 가려 받을 수 있습니다.
민간보험회사가 많다는 것은 의사의 협상력이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의사의 선택권이 많아지면 의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보험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험사도 호구는 아니라서 의사는 비용을 청구하는 이유에 대해 정성스럽게 차팅도 하고 때로는 장문의 편지도 써야 하지만, 나의 의료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의료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산업입니다. GDP 수준에서 의료비가 국방비를 제치고 1위가 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의사를 필요로 하는 일이 practice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각종 연구에 대한 자문은 물론이고 IT 산업, telemedicine, 외국 정부기관 자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4. 한국 의사는 뛰어나다
본격적으로 한국 의사들의 미국 진출 러쉬가 시작되면 미국 의료의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한국 의사들은 뛰어난 지식과 손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의사들은 손을 쓸 때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술기를 시행하지만,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 병원에서 본 미국 의사들은 술기를 어깨 근육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젓가락을 쓰지 않은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이 매우 느리고 투박합니다. 손의 fine motor를 쓸 줄 몰라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 의사들이 이런 미국 의사들과 의료 시장에서 경쟁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아직 한국의사들은 미국의 비인과인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등에서 많이 활약하시지만 한국 의사들의 진출 영역이 점점 더 늘어나서 외과 계열로도 많이 진출한다면 한국 의사들이 충분히 미국 의료시장을 잠식할 수 있습니다.
결론
한국 의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인적 자원 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인재인 당신, 좀 더 자유롭고 전문가로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에서 꿈을 펼치는 것도 한 번 쯤 생각해 볼 만한 때인 것 같습니다.